2026년 고2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43~45번에서 손택수 「저문 들판이 새들을 불러모은다」는 새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농부의 조용한 남김에서 공존의 미덕을 읽어야 하는 작품으로 출제되었습니다. 이번 고2 국어 등급컷은 1컷 89점, 2컷 82점, 3컷 71점, 4컷 59점, 5컷 44점이었고, 문학 세트에서는 한 선지의 주체를 잘못 잡는 순간 점수가 바로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국어를 가르치며 직접 문제를 풀어 보니, 이 세트는 작품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선지의 초점을 바꿔 놓은 지점이 까다로웠습니다. 학생들도 “새들이 먹이를 먹는 장면도 공존 아닌가요?”라고 자주 묻더라구요. 그 질문이 45번 ④의 핵심 함정과 그대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 시의 출발점은 풍요가 아닙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휑하고, 땅은 차갑고, 새들은 먹이를 찾아 내려옵니다. 그런데 화자는 그 빈 들판에서 벼톨 하나의 온기를 발견합니다.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다른 생명을 위해 남겨진 작은 배려, 이것이 작품의 중심입니다.
43번은 왜 정답률 69%였을까요?
43번의 핵심은 두 작품의 공통 표현을 묻는 것이었고, 정답은 ⑤ 의인법입니다. 직접 풀어 보면 ③과 ④가 잠깐 눈에 들어오지만, “(가)는 (나)와 달리”라는 비교 조건을 끝까지 확인하면 ⑤로 정리됩니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은 “둘 다 비슷한 문장 구조가 있지 않나요?”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③이 틀립니다. (가)에만 유사한 통사 구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도 “~에만 있는 게 아니라 / ~에도 있었구나”의 반복 구조가 있습니다. 차이점으로 제시한 선지는 성립하지 않아요.
④도 비슷합니다. “차디찬 저 하늘” 때문에 (나)의 촉각적 이미지를 잘 잡은 학생들이 ④에 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에도 “눅눅해진 피부”처럼 촉각적 이미지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표현상 특징을 아느냐보다 비교 선지의 범위를 끝까지 읽느냐를 확인한 문항이라고 보면 됩니다.
44번 ㉢은 농부의 허전함이 아닙니다
44번에서 ㉢ “짐짓 무심히 떨궈진 벼톨 하나”는 농부가 수확 뒤의 허전함을 숨긴 장면이 아니라, 화자가 추수 뒤 남은 벼톨을 새들을 위한 조용한 배려로 읽어 내는 대목입니다. 정답률은 80%였지만, 수업에서는 이 표현을 가장 오래 붙잡게 되더라구요.
학생들이 실제로 많이 묻는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무심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떨어뜨린 것 아닌가요?” 그리고 “짐짓이라고 했으니 속마음을 숨긴 것 아닌가요?” 여기서 바로 선을 그어 주어야 합니다. 이 시는 농부의 허전한 심리를 설명하는 시가 아닙니다. 벼톨 하나가 새들에게 먹이가 되는 장면을 통해, 무심한 듯 남겨진 것이 배려로 읽히는 순간을 보여 줍니다.
수업에서는 칠판에 두 칸을 그려 설명합니다. 왼쪽에는 “농부의 감정 추측”, 오른쪽에는 “화자의 인식”을 씁니다. ㉢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입니다. 시험에서는 농부 마음을 새로 만들어 내면 틀리고, 원문에 드러난 화자의 인식 변화로 읽으면 맞습니다.
45번 ④는 새의 행동과 농부의 배려를 바꿔 놓은 오답입니다
45번 정답은 ④입니다. 나그네새가 “긴 부리 짧은 부리”를 바쁘게 움직이는 장면은 생존을 위한 먹이 활동이지, 다른 존재와 먹이를 나누려는 공존의 미덕이 아닙니다. 이 구분이 이 작품 감상의 핵심이에요.
이번 43~45번 세트에는 20% 이상 몰린 단일 오답 선지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45번에서는 ③이 10%, ⑤가 8% 선택됐고, 실제 수업에서도 ④를 지우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젓가락질 바쁜 나그네새”라는 표현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장면이 생생하면 주제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 학생들에게는 “새는 배려하는 쪽이 아니라 배려를 받는 쪽”이라고 정리해 줍니다. 공존의 미덕은 새들이 부리를 움직이는 데서가 아니라, 벼톨이 남겨져 새들이 먹을 수 있게 된 상황에서 확인됩니다. 이 한 문장으로 잡으면 45번 ④는 꽤 선명하게 틀린 선지가 됩니다.
최저 정답률 문항입니다. 의인법 공통점을 묻되, ③·④의 비교 조건이 학생들을 흔들었습니다.
㉢은 농부의 허전함이 아니라 화자가 읽어 낸 배려입니다. 심리 추측을 경계해야 합니다.
새의 먹이 활동과 농부의 공존 의식을 구분하는 문항입니다. 주체를 바꾸면 오답입니다.
벼톨과 별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후반부의 별은 단순히 아름다운 밤하늘이 아니라, 들판의 벼톨과 연결된 이미지입니다. 벼톨이 새들에게 먹이가 되듯, 별은 화자에게 “한동안 살아도 되겠다”는 조심스러운 빛이 됩니다.
학생들이 “별이 왜 벼이삭이에요?”라고 묻는 지점도 여기입니다. 앞부분에는 “까치밥은 감나무에만 있는 게 아니라 / 저 휑한 들판에도 있었구나”가 나오고, 후반부에는 “벼이삭은 들판에만 있는 게 아니라 / 차디찬 저 하늘에도 있었구나”가 나옵니다. 같은 문장 구조로 화자의 시선이 감나무에서 들판으로, 들판에서 하늘로 넓어집니다.
이때 별은 현실을 벗어난 환상이 아닙니다. 차디찬 하늘에 드문드문 숨어 빛나는 별은,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작은 근거입니다. 이 작품의 긍정은 크고 화려한 희망이 아니라, 벼톨 하나와 별빛 몇 개를 바라보며 버티는 절제된 긍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등급컷을 생각하면 이 세트는 ‘주체 구분’ 문항입니다
2026년 고2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등급컷은 1컷 89점, 2컷 82점, 3컷 71점, 4컷 59점, 5컷 44점이었습니다. 이 흐름에서 43~45번 문학 세트는 고난도 작품 해석보다 표현의 주체와 감상의 근거를 정확히 구분하는 능력을 확인한 세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43번은 두 작품 모두에 해당하는 표현을 찾아야 했고, 44번은 밑줄 표현을 농부의 심리로 과하게 밀어붙이면 틀렸습니다. 45번은 새의 먹이 활동을 공존의 미덕으로 바꾸어 읽으면 오답이 됩니다. 세 문항 모두 결국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확인하는 문제였습니다.
수업에서 이 작품을 정리할 때는 세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들판은 비어 있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 않습니다. 벼톨은 작지만 새들을 살리는 온기입니다. 별은 멀지만 화자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빛입니다. 이 세 문장이 연결되면 작품의 주제와 문항 판단이 함께 정리됩니다.
최영철 작품과의 비교는 필요한 만큼만 보면 됩니다
같은 세트의 최영철 「일광욕하는 가구」는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생명력을 회복하는 쪽이고, 손택수 작품은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다른 생명을 배려하는 쪽입니다. 두 작품 모두 생의 긍정성을 말하지만, 긍정이 나오는 장면은 다릅니다.
비교 문항에서는 이 차이만 잡아도 충분합니다. (가)는 젖은 가구들이 사람처럼 그려지고, 서로 알아보고 몸을 뒤집어 주는 장면이 중심입니다. (나)는 들판, 벼톨, 새, 별이 이어지며 조용한 배려와 공존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두 작품을 섞어 외우면 오히려 45번 같은 보기 감상 문항에서 주체가 흔들립니다.
시험 직전 핵심 정리
- 들판의 첫 의미는 결핍입니다. 추수 끝난 들판은 비어 있고 궁핍한 공간입니다.
- 벼톨 하나는 새들을 살리는 먹이이자, 화자가 발견한 작은 온기입니다.
- 농부들의 무심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드러내지 않는 배려로 읽어야 합니다.
- 별의 의미는 벼이삭과 연결됩니다. 별은 화자가 한동안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작은 빛입니다.
- 45번의 함정은 주체 바꾸기입니다. 새의 먹이 활동을 공존의 미덕으로 보면 틀립니다.
손택수 「저문 들판이 새들을 불러모은다」의 핵심은 벼톨 하나에서 읽히는 공존의 미덕입니다. 2026년 고2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43~45번은 등급컷 1컷 89점, 2컷 82점, 3컷 71점, 4컷 59점, 5컷 44점의 시험 흐름 속에서, 작품의 정서를 막연히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표현의 주체와 감상의 근거를 정확히 가르는지를 확인했습니다. 빈 들판, 벼톨 하나, 새들, 별을 한 줄로 연결하면 이 작품은 궁핍한 현실 속에서도 다른 존재를 배려하는 조용한 긍정을 보여 주는 시라고 정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