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근원」은 눈물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지만, 실제로는 그리움이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묻습니다.
심노숭의 「눈물의 근원[淚原]」은 2026년 고1 6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39-42번 갈래복합 지문에 출제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문제를 풀어 보니 까다로운 지점은 작품의 슬픔이 아니라, 눈·마음·감응의 관계를 선지 기능과 연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고1 국어 등급컷은 1컷 92점, 2컷 83점, 3컷 73점, 4컷 61점, 5컷 48점이었고, 이 점수대에서는 39번처럼 정답률 47% 문항에서 표현법 이름만 보고 고르는 학생들이 크게 갈렸습니다.
「눈물의 근원」은 어떤 글인가요?
「눈물의 근원」은 눈물이라는 현상을 통해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감응의 이치를 따지는 고전 수필입니다. 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의 한문 산문으로, 제목의 ‘원(原)’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근본, 원리, 본질을 거슬러 올라가 따지는 글의 성격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이 지문은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학생들이 처음 읽을 때는 눈물, 곡, 제사, 죽은 아내의 혼령 같은 표현 때문에 애도 정서만 붙잡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슬픔을 그대로 토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눈물이 왜 어떤 때는 나고 어떤 때는 나지 않는지, 그리고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되살아나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집니다.
20년 넘게 국어를 가르치며 이 문제를 직접 풀어 보니, 까다로운 지점은 작품 내용 자체보다 질문이 묻는 층위였습니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선생님, 눈물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 아닌가요?”라고 자주 묻더라구요. 그 질문을 그냥 넘기면 41번에서 바로 흔들립니다. 이 지문은 감정어를 많이 찾는 방식보다, 눈·마음·감응의 관계를 선으로 이어 가며 읽어야 합니다.
핵심 눈물은 눈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느낌이 눈의 반응과 맞닿을 때, 다시 말해 감응이 일어날 때 눈물은 흘러나옵니다.
눈물은 눈에 있나요, 마음에 있나요?
이 작품의 답은 “눈물은 눈과 마음 중 한쪽에만 있지 않다”입니다. 글쓴이는 먼저 두 가지 가능성을 차례로 따집니다. 눈물이 눈에 있다면 눈 속에 물이 고여 있다가 나오는 것처럼 설명해야 합니다. 마음에 있다면 피가 맥을 타고 다니듯 몸 안에서 이동하는 것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눈물은 분명 눈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눈의 역할을 빼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움직임 없이 눈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사별, 그리움, 감동 같은 내적 느낌이 없으면 이 작품이 말하는 눈물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글쓴이는 마음을 땅에, 눈을 구름에, 눈물을 비에 비유합니다. 비가 구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땅에만 있는 것도 아니듯, 눈물도 눈과 마음 중 한쪽에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눈물은 마음과 눈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41번에서 왜 ‘마음이 없어도 나온다’가 틀렸을까요?
41번의 답은 ④입니다. 정답률은 72%였고, 보기의 오류는 “눈물은 마음이 없어도 나온다”는 식으로 결론을 바꾼 데 있습니다. 「눈물의 근원」은 마음을 지우는 글이 아니라, 마음의 느낌과 눈의 반응이 감응할 때 눈물이 나온다고 말하는 글입니다.
지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냅니다. 마음을 빼면 안 되고, 눈도 빼면 안 됩니다. 마음은 눈물을 일으키는 내적 계기이고, 눈은 눈물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제가 직접 풀어 볼 때 41번은 빨리 풀면 오히려 틀리기 쉬운 문항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자주 묻는 지점도 거의 같습니다. “눈물이 눈에서도 나오고 마음에서도 나온다면, 결국 마음이 없어도 눈에서 나올 수 있다는 뜻 아닌가요?” 이렇게 질문하더라구요.
수업에서는 이 부분을 칠판에 세 칸으로 나눠 풀어 줬습니다. 첫 칸에는 ‘마음의 느낌’, 둘째 칸에는 ‘눈의 반응’, 셋째 칸에는 ‘눈물’을 놓고, 가운데에 ‘감응’이라고 적어 줍니다. 그러면 ④의 오류가 바로 보입니다. 마음을 지워 버린 결론이기 때문에 틀린 거라고 보면 돼요. 학생들도 이 도식으로 다시 보면 “아, 마음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네요”라고 정리하더라구요.
정리하면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눈물 = 마음의 느낌 + 눈의 반응 + 기의 감응
따라서 ‘마음 없이도 눈물이 나온다’가 아니라, 마음의 느낌이 눈의 반응으로 이어질 때 눈물이 나온다가 지문의 결론입니다.
39번 정답률 47%, 학생들은 어디에서 많이 헷갈렸나요?
39번은 표현법의 이름이 아니라 기능까지 확인해야 풀리는 문항입니다. (가) 「석춘사」와 (나) 「눈물의 근원」의 공통점을 묻는 문제였고, 정답률은 47%로 이 묶음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정답은 ②, 대구를 통해 의미를 강조한다는 내용입니다.
고1 국어 등급컷은 1컷 92점, 2컷 83점, 3컷 73점, 4컷 61점, 5컷 48점이었는데, 이런 시험에서는 39번처럼 표현법 이름과 문맥 속 기능을 함께 묻는 문제가 점수 차이를 만들기 쉽습니다.
제가 이 문항을 직접 풀며 가장 먼저 확인한 것도 “표현법이 있느냐”가 아니라 “그 표현법이 무엇을 하느냐”였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③에 많이 끌렸습니다. 왜냐하면 두 작품에 설의적 표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논해 무엇하리오”가 눈에 띄니까 ③도 맞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하지만 ③은 설의의 기능을 ‘대상과의 일체감’으로 잡아 버렸습니다. 학생들이 ③에 끌린 이유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 기능이 맞지 않아서 탈락시켜야 합니다.
수업에서는 여기서 표현법 이름만 동그라미 치지 말고, 그 옆에 ‘무엇을 강조하는가’를 짧게 적게 했습니다. 그러면 대구는 의미 강조로 살아남고, ③은 일체감이라는 효과가 지문과 맞지 않아 빠집니다. 39번처럼 정답률이 낮은 문제는 표현법 이름과 기능을 분리해 표시해야 합니다.
매력 오답은 ③이었습니다. ③을 고른 비율이 30%였습니다. 「석춘사」에도 “생각인들 어이 하리” 같은 표현이 있고, 「눈물의 근원」에도 “논해 무엇하리오” 같은 표현이 나오니 학생들이 “설의는 맞잖아요”라고 묻더라구요. 그때 저는 “설의가 있느냐가 아니라, 설의가 대상과의 일체감을 만들었느냐를 보라”고 다시 풀어 줍니다. 이 지점이 맞지 않기 때문에 ③은 매력적인 오답이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⑤도 15%가 선택한 오답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정서가 이어지고 반복되는 느낌은 있지만, 대상에 대한 태도가 변하는 과정을 연쇄적 표현으로 보여 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갈래복합 문제에서는 표현법 이름만 보고 고르면 자주 흔들립니다. 표현법이 무엇을 하느냐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봄이 가는 아쉬움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 그리는 행위와 연결합니다. 이 글에서는 「눈물의 근원」 분석에 필요한 비교 맥락만 확인하면 충분합니다.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눈물과 감응의 논리로 확장됩니다. 단순한 애도보다 논리적 탐구 방식이 중요합니다.
42번은 왜 ⑤가 답인가요?
42번의 답은 ⑤입니다. <보기>를 바탕으로 두 작품을 감상하는 문제였고, 정답률은 64%였습니다. ⑤는 두 작품의 경험을 ‘대상이 느낀 상실감에 공감’하는 내용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②는 적절합니다. 「눈물의 근원」에서 글쓴이는 거문고와 피리가 가득한 자리, 일 처리를 하느라 책상 위에 물건이 수북한 때, 술을 마시거나 바둑과 장기에 정신을 빼앗긴 때를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겉으로는 눈물과 관계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무언가에 저촉됨이 있으면 느낌이 생기고, 눈물은 그 느낌을 따라 나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적 반응의 이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⑤가 틀린 까닭은 ‘대상이 느낀 상실감에 공감’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가)는 화자가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고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나)는 글쓴이가 죽은 아내와의 통함, 눈물과 감응의 이치를 따지는 내용입니다. 두 작품 모두 부재와 그리움이 있지만, ‘대상이 느낀 상실감’에 공감한다고 정리하면 초점이 빗나갑니다.
42번은 오답 선택률이 20%를 넘는 선지는 없었지만, 수업에서 질문이 많이 나왔던 문항입니다. 학생들이 특히 “②도 일상 경험이고, ⑤도 구체적 경험 아닌가요?”라고 묻더라구요. 이 질문은 좋은 질문입니다. 둘 다 경험을 말하지만, <보기>가 요구한 초점이 다릅니다.
수업에서는 ②를 먼저 살렸습니다. “이 모든 경우”는 눈물과 직접 관련 없어 보이는 일상인데, 무언가에 저촉되면 느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②는 지문의 논리와 딱 맞습니다. 반면 ⑤는 ‘대상이 느낀 상실감’이라고 방향을 바꿔 버립니다. 글쓴이가 느끼는 상실과 그리움이지, 대상이 느낀 상실감을 따라가는 문제가 아니라고 기억하세요.
공부할 때 무엇을 먼저 잡아야 하나요?
「눈물의 근원」은 ‘눈물의 위치’보다 ‘감응의 이치’를 먼저 잡아야 합니다. 작품의 갈래를 단순히 고전 수필이라고만 외우지 말고, ‘원(原)’ 계열 산문처럼 본질을 따져 묻는 글이라는 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의문문이 반복됩니다. 질문은 장식이 아니라 논리의 진행 방식입니다.
둘째, 마음-땅, 눈-구름, 눈물-비의 비유를 반드시 연결해야 합니다. 이 비유는 작품의 중심 논리를 압축합니다. 눈물은 어느 한쪽의 소유물이 아니라, 마음과 눈 사이의 감응으로 생긴다는 결론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셋째,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글쓴이가 장례의 자리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하며, 곡하지 않는 순간에도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제시하는 까닭은 감정이 장소나 형식에 기계적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갈래복합에서는 「석춘사」와의 비교를 너무 넓게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문제에서는 두 작품의 공통 표현 방식,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 구체적 경험을 통한 정서와 사유의 전개 정도를 확인하면 됩니다. 「눈물의 근원」 자체의 핵심은 눈물의 근원보다 감응의 이치에 있습니다.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먼저 문제를 풀게 한 뒤, 표시한 선지만 지우지 말고 왜 골랐는지를 한 줄로 쓰게 합니다. 39번에서 ③을 고른 학생은 대개 ‘설의가 있어서’라고 씁니다. 그때 “표현법 이름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라, 그 표현법의 효과까지 맞아야 한다”라고 정리해 줍니다. 41번은 ‘마음 없이도’라는 말을 동그라미 치게 하고, 42번은 ‘대상이 느낀’이라는 주어를 확인하게 하면 훨씬 안정적으로 잡힙니다.
한 줄 결론
「눈물의 근원」은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눈물이 눈과 마음 사이의 감응 속에서 흘러나온다는 이치를 논리적으로 밝힌 작품입니다.
고1 국어 등급컷은 1컷 92점, 2컷 83점, 3컷 73점, 4컷 61점, 5컷 48점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 내용 확인보다 표현법의 기능과 <보기>의 초점을 정확히 붙잡는 연습으로 마무리하면 됩니다.


